[이 아침에] ‘찾아주어 고맙소!’
한국이나 타주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연락이 교회 사무실로 종종 온다. 친척을 찾는다는 이들도 있고, 미국으로 갔다는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끊어진 인연을 이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만으로 사람을 찾는 것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만큼 막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는 이들의 애틋한 사연을 들을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몇 달 전에도 그런 전화를 받았다.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그것도 죽은 사람이다. 더구나 한국 사람도 아니고 로버트 맥클레이라는 미국 사람의 묘소를 찾는다고 했다. 로버트 맥클레이는 중국을 거쳐 일본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였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볼티모어에서 목회하던 가우처 목사로부터 급히 조선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받았다. 가우처 목사는 조선에서 온 ‘보빙사절단’을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하던 중 조선 선교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가우처 목사의 부탁으로 조선을 방문한 맥클레이 선교사는 김옥균을 통해 고종에게 선교의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1884년 7월 2일, 고종 황제로부터 병원과 학교를 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조선 선교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선교 윤허를 통해 1885년 부활절 오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디므로 조선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선 선교의 문을 연 로버트 맥클레이 선교사야말로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이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인물이다. 그런 선교사의 묘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LA한인타운 인근 로즈데일 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묘소 위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이에게 맥클레이 선교사의 묘소를 왜 찾느냐고 물었다. 한국의 선교유적지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단체에서 왔다는 일행은 미국에 있는 선교사 유적지 탐방을 하면서 맥클레이 선교사의 묘소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공원묘지 관리 사무소에 연락을 취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혹시나 해서 교회로 전화했단다. 언제 방문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막 공항에 도착했는데 짐 찾는 대로 곧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을 안내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로즈데일 공원묘지로 갔다.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니 십여 명의 순례객을 태운 대형버스가 들어왔다. 이들은 장거리 여행의 고단함도 잊은 채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은 꽃바구니를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맥클레이 선교사의 묘소는 오랫동안 깎지 않아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적갈색 묘비에 쓰인 ‘Missionary to Korea 1884 (한국 선교사 1884)’라는 글씨만큼은 판연히 빛나고 있었다.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감사하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가까이 있으면서도 몇 년 만에 찾아온 나를 부끄럽게 만들 때, ‘찾아주어 고맙소!’라는 맥클레이 선교사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순간 나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자주 찾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뵐게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맥클레이 선교사 조선 선교가 한국 선교사